“연말 만기 퇴직연금 잡아라”… 금융권 경쟁에 금리 껑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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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3, 2022 05:38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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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의 퇴직연금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금리가 치솟고 있다. 가입자 입장에서 금리는 곧 수익률이지만, 금융사로선 자금 조달 비용 부담이다. 그럼에도 업계가 금리를 올리는 것은 더 높은 이자를 주는 상품을 찾아 이동하는 소비자를 잡기 위함이다.
13일 금융감독원과 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증권사와 보험사, 은행과 저축은행 등이 확정급여형 퇴직연금 금리를 줄줄이 올려 내놓고 있다. 이날 기준 업권별 DB형 퇴직연금 평균 금리는 ▲증권 6.34%, ▲생명보험 5.55%, ▲손해보험 5.42%,▲저축은행 5.98% ▲은행 5.13%다.
근로자 대신 기업이 운용하는 DB형 퇴직연금 상품은 통상 사업자와 기업 간 1년 단위로 계약하는데, 70~80%가 12월 만기다. 은행의 DB형 퇴직연금 최저금리가 4.8%, 최고 5.7%로, 지난해 11월 은행의 원리금보장형 금리가 연 1%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금리가 크게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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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은현 전체 업권 중에서는 증권사의 퇴직연금 금리가 가장 높았다. 특히 다올투자증권은 이달 중순 연 8.5%짜리 만기 1년 원리금 보장 ELB(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 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전체 업권 통틀어 금리 수준이 가장 높다. ELB는 주가, 지수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아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약속한 수익률을 보장하는 상품으로, 중도 상환을 요구하지 않는 한 원금이 보장된다.
보험업계 최고 금리는 6.6%(푸본현대생명보험), 저축은행권에서는 최고 6.56%(키움저축은행)다. 은행업계가 정기예금 금리를 줄상향하고 증권사가 ELB 금리를 높여 손님 잡기와 자금 확충에 열을 올리면서 보험사들도 이달 금리를 올리면서 대응에 나섰다.
요즘 퇴직연금 시장의 금리 경쟁에서는 보험업계의 유동성 우려가 상대적으로 더 크다. 보험사의 퇴직연금 상품인 이율보증형 보험은 일정기간 국공채 등에 투자해 확정 이율을 보증한다. 하지만 금리 인상기에는 시중금리를 탄력적으로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 이 탓에 더 높은 금리를 주는 증권사로 자금 이동이 가속화할 수 있다.
위지원 한국신용평가 금융구조화평가본부 금융1실장은 “매년 연말 퇴직연금 시장에서 30%의 자금이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나 올해는 금리 인상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이동 규모가 상당히 증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 보장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퇴직연금 계약 해지 등 유동성 유출 우려도 있지만, 금리가 오르면서 역마진으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시장의 자금 이동으로 보험업계의 유동성 충격과 채권 시장 경색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쉽게 말하면, 고객이 만기 후 재계약하지 않고 더 높은 금리의 퇴직연금 상품으로 갈아타면 기존 금융사는 퇴직연금 자산에 포함된 채권을 매각하고 현금화해 신규 계약한 금융사에 넘겨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채권 매도가 이뤄지면서 채권시장의 불안을 키울 수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특별계정 퇴직연금 차입 규제를 한시적으로 풀면서 RP 매도를 내년 3월말까지 허용해 보험사들의 숨통을 터 준 상황이다. 이와 함께 최근 금융사들에 금리 과당 경쟁 자제를 권고하기도 했다. 키움증권은 지난 2일 금리 8.25%대 이율보증형 퇴직연금을 내놨으나, 출시 하루 만에 상품을 철회하기도 했다.
이병건 D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감독 당국이 보험사들이 RP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을 확대했고, 보험사들의 유동성 규제도 일시적으로 완화해 자금시장에 주는 충격을 완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자금 이동으로 인한 극단적 상황을 우려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강승건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달 퇴직연금 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스프레드 확보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차입·RP매도 시에도 조달 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스프레드 마진에도 부정적인 영향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퇴직연금제도는 크게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이 있다.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은 적립금을 사용자(기업)가 운용하고, 근로자는 사전 확정된 퇴직급여를 수령하는 방식이다. DC형과 IRP는 근로자인 개인이 직접 운용하는 것이고, DB형은 근로자가 속한 기업이 운용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전년 말보다 40조1000억원(15.7%) 증가한 295조6000억원 규모였다. DB형 적립금은 171조5000억원, DC형 77조6000억원, IRP 46조5000억원이다.